시민평화법정을 바라보며(남도일보 화요세평 - 문정현 대표변호사)
-
229회 연결
본문
시민평화법정을 바라보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과 피해배상을 바란다
<문정현 법무법인 바른길 대표변호사>
![]() |
서울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은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황을 가정해 열린 일종의 모의재판이었다. 모의재판의 변론과정에서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 출신인 응우옌 티 탄 등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직접 참석해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눈물로 증언했다. 1968년 2월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위치한 퐁니 퐁넛 마을에서 주민 70여명이 한국군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로 50주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 당시 8살 소녀였던 응우옌은 모의법정에서 ‘방공호에서 사람이 나오는 대로 총을 쐈고, 한국 군인이 집에 불을 지르려고 하는 것을 아기를 안고 있던 응우옌의 이모가 말리려 하자 한국 군인이 이모의 배를 칼로 찔렀으며, 여성과 어린 아이 뿐이었던 응우옌의 가족에게 수류탄을 던져 결국 어머니와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동생까지 5명의 가족을 잃었다’고 증언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잔인한 학살이 왜 일어났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서 ‘한국 참전 군인들의 사과를 받고 싶다. 최소한 사과가 있어야 용서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울먹였다. 변론을 마친 이후 지난 4월 22일 재판장인 김영란 전 대법관은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국가배상법이 정한 배상기준에 따라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책임을 공식 인정하라’고 원고들 승소판결을 내렸다.
비록 법적 구속력이 없는 모의재판이었으나, 당시의 비인도적 폭력과 참상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결론에 공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경위야 여하튼 우리 대한민국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 군인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하고, 그에 합당한 배상을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우리 나라도 베트남 못지 않은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일제 치하에서 젊은 청년은 강제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가야 했고, 젊은 여성은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이국땅으로 붙들려 가야만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일부 독립투사들은 731 부대에 끌려 가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고, 1920년 무렵에는 일본군이 간도 조선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사건도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그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 커녕 역사를 왜곡하고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고 있다. 일본의 이와 같은 추하고도 부끄러운 모습에 우리나라와 국제사회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게 올바른 역사인식과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듯, 지금 베트남이 우리에게 베트남전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과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의 아픈 상처를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고, 가슴으로 사과해야 할 때이다. 나아가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충분한 배상을 하여야 한다. 이것만이 대한민국을 따뜻하고 정의로운 나라로 다시 우뚝 세우는 길이라고 믿는다.
얼마 전 우리는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아 우리의 군인, 경찰에 의한 제주도민의 대학살 사건을 되돌아보았다. 자국의 군인과 경찰이 7년여에 걸쳐 제주도민을 상대로 모질게 대학살한 참혹한 역사를 더 이상 외면하거나 왜곡하여서는 안된다. 역사적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로 인한 국가의 진심어린 사과와 적절한 배상을 통해 아픈 상처를 치유해야만 한다. 전쟁의 광기는 물론이고 이데올로기의 편협성과 잔인성을 더 이상 정당화하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고엽제 전우회 대구지부 회원들은 ‘생존자들의 증언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라며 당시 월남 참전자들을 학살자로 매도하는 주최측은 종북세력임이 틀림없다’며 베트남 생존자들의 증언 중단을 요구했단다. 대한민국 월남전 참전회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비뚤어진 그들의 역사인식에 서글퍼진다. 그들도 월남전의 피해자임이 분명하다. 그들도 우리 모두가 보듬어 안아야 할 아픔이다. 사랑과 용서를 위한 위대한 여정에 동참하길 바랄 뿐이다. 이 멋진 봄날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김경태 기자 kkt@namdonews.com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0